동서양의 수많은 학문, 즉 철학사상과 과학기술이 있지만 이 중에서 최고의 철학사상이며 최첨단 과학기술 학문으로 동양의 주역을 들 수 있다. 즉, 주역은 이 시대 최고의 궁극적 영원한 철학이요, 최첨단 과학기술이며 인류 최고의 문화재이다.
특히 종교와 철학 그리고 과학기술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종교적 바탕 위에서 철학을 나타내고, 뿐만 아니라 이를 생활에 접목 응용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과학기술이 있다. 주역에서는 종교와 과학 및 철학이 별개의 것이 아니고 하나이며 단지 신을 의식하느냐, 관념적 추상적이냐,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냐에 따라서 종교, 철학, 과학기술적 학문으로 나누어진다. 즉, 물질세계와 비물질세계인 기와 신의 세계를 모두 포괄하는 도와 학과 술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주역을 종교가 보면 종교요, 철학자가 보면 철학이요, 과학자가 보면 과학이요, 점술가가 보면 점술이라고 한다. 이점이 서양학과 큰 차이점이다.
현대사회 제도권 서양과학기술이 데카르트의 이성과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 근거한 물질론적 기계론적 철학사상에 입각한 과학기술이지만 이들의 철학사상을 주역과 비교해볼 때 보이지 않는 비물질세계인 기와 신의 세계를 배제시키고 탄생한 기계론적 물질세계를 이성에 근거해서 출발한 학문이다 보니 정신적이며 유기체론적 인간사회에는 맞지 않는 의미 있는 철학과 과학도 아니어서 매우 단조롭고 형식적이다. 단조롭고 형식적이라는 말은 1+1=2라는 식의 물질론적 기계공학적 논리로 기와 신의 세계와 밀접한 정신적이며 유기체론적인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인문사회과학에 들여와서 적용을 하니 그것이 타당한 논리가 되지 않고 적실하지 않은 형식적인 학문을 위한 학문이라는 의미이다. 주역의 종교, 철학, 과학기술적 측면을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역의 종교적 측면에 대해서 대만 총통의 국사였던 남회근 선생은 주역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계사상전 제10장의 내용 중에서 "역은 아무런 사고도 행위도 없이 적연 부동하다가, 일단 감응하면 천하의 모든 이치에 통한다. 천하의 지극한 신묘함이 아니고서 누가 이에 참여할 수가 있겠는가?"의 글을 근거로 주역의 종교적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위의 내용에서는 형이상의 도, 즉 역의 본체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역은 그 본체가 형이상의 도라는 것이다. 형이상은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이 추구하는 목표이다. 종교는 항시 만물의 근원인 최초의 어떤 것을 찾아내고자 한다. 이 최초의 것이 바로 신이니 보살이니 하는 것들이다. 역경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을 신이라 해도 좋고, 또 심물일원이라 표현해도 좋다. 여하튼 역경에서는 이미 최고의 경지로서 다른 어떤 것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을 설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경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서양의 모든 종교철학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역경에서는 신을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소위 유니 무니 하는 것도 음양의 두 현상으로 본다. 음양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없다. 역에서 말하는 형이상의 본체는 아무 생각이 없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만약 생각이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미 도의 경지가 아니다.
'무사, 무위'에 이르도록 수련을 하면 마침내 도의 본체에 이르는데, 그것은 천지만물의 뿌리와도 같다. 이 본체는 적연부동하다. 그렇지만 완전히 죽어 있는 상태와는 다르다. '감이수통', 느낌이 있으면 곧 통한다. '감이수통천하지고'해야만 비로소 우주의 만법이 될 수 있다. 옛사람들이 말하는 '마음이 텅 빈' 경지에 이른다면 그때는 능히 만사를 다 알 수 있다.
역경은 그 대부분이 도의 작용, 즉 상수에 대한 언급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무사야, 무위야, 적연부동, 감이수통천하지고"라고 하여 도의 본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비천하지지신'에서 신은 형용어이다. 불가사의하리만큼 신묘하다는 것이다. 이 신은 불교나 도교 천주교의 모든 신들을 모두 포함한다. '지신'은 보통의 신이 아니다. '기숙능여어차?' 숙이란 누구라는 뜻이다. 천하의 오묘한 신명이 아니고서야 누구의 경지가 이처럼 출중할 수 있겠는가?
이 절은 역의 본체에 대해 아주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지금까지 관찰한 경험에 의하면 동서양의 어떤 종교나 철학도 역경을 능가할 만한 것이 없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종교의 목표는 궁극적으로는 실재에 대한 파악, 즉 세계 혹은 우주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파악에 있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궁극적 가치와 의미의 파악 그리고 모든 현실 존재들 배후에 있는 생성과 변화의 원리와 질서에 대한 파악을 위한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종교의 개념에 입각해볼 때 주역의 종교적 특성을 알 수 있다. 먼저 주역에서 말하는 우주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은 도를 의미하고 도에 입각한 인간의 삶을 바람직하게 보았으며 그것이 곧 모든 사물의 궁극적 가치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현실 존재들 배후에 있는 생성과 변화의 원리와 질서가 주역에서는 도를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 음양오행론이다.
둘째, 최고의 철학이란 천인합일적 시각에서 우주론적 순환론적 자연의 이치이고 궁극적 진리인 천지의 도에 근거해서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방향과 표준을 말해준다는 의미에서의 궁극적 영원한 철학이다. 즉, 뚜렷한 궁극적 종지의 준거기준이 있다. 준거기준이 단순한 개인적 관점이나 이상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고, 모든 인류가 영원히 궁극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우주론적 자연의 도의 절대적 표준과 근본적인 근거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다른 동서양의 철학이 단순히 개인적 삶의 수준과 환경 속에서 우러나온 개인의 이성에 근거한 관점적 아이디어적 철학사상과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우주적 차원의 과학적 철학사상이라고 본다.
셋째, 뿐만 아니라 주역철학을 구체적으로 실용화한 과학기술적 학문이 있다는 점에서 주역철학의 의미와 생명력이 남다르다. 더욱이 주역철학의 과학기술적 학문인 역학 역술이 기존의 제도권의 지배적인 학문인 서양과학기술에 비해서 새롭고 앞선 학문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대개의 경우 서양철학이나 동양의 다른 철학들은 철학사상 수준에서 관념적 추상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비해서 주역철학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과학기술이 일관되게 체계화되어 있다. 그래서 주역철학의 의미와 가치가 우리의 생활 속에 내재화되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철학사상이 훌륭하다 해도 구체적이고 실용적으로 생활에 접목 응용하여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면 소설같은 공허감을 벗어날 수 없다.
주역과 주역에서 비롯된 여러 학문, 즉 상수역인 동양오술을 비롯해서 기문둔갑 육임 태을 등을 보면 현대물리학의 원리인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카오스복잡계 홀로그램 프랙탈 등의 이론에다가 영혼의 세계를 모두 포괄한 체계화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과학기술임을 느낄 수 있다. 서구는 양자물리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신과학적 개념과 이론들을 원론적 수준에서 원리를 밝히고 해명하는 데만 초점을 두고 있지 그러한 개념원리 법칙에 의해 구체적으로 체계화한 주역과 주역에서 비롯된 미아리철학관 중심의 역학 역술 같은 학문을 없는 것 같다. 즉, 주역은 현대물리학 차원과 신의 세계를 모두 포괄한 철학이요, 과학기술적 학문이다.